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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전시실에는 제주교육의 얼이라는 주제로 10개 코너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코너별 자료로는 조선조에 제주교육에 막중한 영향을 준 이를 뽑아 후대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소개하는 조선시대 교학인 코너, 개화기부터 현재까지의 제주 교육열이 높았던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제주교육의 의지코너, 제주의 여신상을 느낄수 있는 1950년대부터 60년대까지의 시장의 어머니들 코너, 1940년대부터 학교건물, 인물, 학생활동을 내용으로한 사진자료 및 기관이나 학교에서 발간한 교지등의 간행물을 전시한 제주교육의 발자취 코너, 제주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제주인의 얼 코너. 제주의 어린이 놀이문화를 디오라마 기법으로 전시한 제주어린이 놀이문화 코너, 제주의 언어문화를 보여주는 코너, 지난날의 학교생활 모습을 회상해보도록 사진자료를 전시한 추억의 교육현장코너, 마지막으로 제주교육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미래의 제주교육 코너 총 204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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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제주교학인
영곡 고득종:1413년(태종 13) 효행으로 천거받아 직장이 되었다. 1414년 알성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제주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당산관까지 승진하였으며 제주도의 교육에 많은 관심을 두어, 학교시설, 교육내용, 시험방법, 체벌계획 등에 대해 교육적 성격을 표명하였다. 문장과 서예가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사후에 정문이 세워졌다.
김만덕: 제주 성내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테어났다. 18세에 기적에 올라 기역에 종사하다가 24세에 기안에서 제적되어 양녀로 복귀하였다. 그후 객주집을 차려 많은 돈을 모았고, 정조 16년(1792년)부터 4년간 제주도에 대흉년이 들어 식량이 고갈되자 사재를 털어 육지에서 양곡을 사와 구호곡으로 쓰게 하였다. 이에 만덕은 1796년 가을 내의원 의녀반수의 벼슬로 임금님을 알현하고 이듬해에 금강산 유람을하였다. 이러한 만덕의 봉사정신은 제주도의 사회사업과 사회교육의 귀감이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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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육의 발자취
1940년대부터 학교건물, 인물, 학생활동을 내용으로한 사진 자료와 그 밑에 각 기관 및 학교에서 발간한 교지등의 간행물과 특히 각 학교의 뺏지들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 있습니다 1940년대 교지

1950-60년대 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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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조냥정신
수눌음: 수눌음은 제주정신의 뿌리이며, 생산 공동체 노동협부의 관습이다. 마을은 몇 개의 소집단으로 나뉘어 서로 도우며 일하는 협부조직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집단의 협업노동에는 일의 능률과 일의 신명을 부추기는 노래가 끼어들게되는데 이러한 일노래는 '공동체를 결속하고 강화하는 놀이'라 할 수 있다. 연자마접의 접원들이 부르는 공동체의 일노래는 방앗돌을 운반할 때 부르는 '방앗돌 굴리기 노래'가 있다.
연자마계: 연자마계의 연자마를 공동으로 설립 운영하며, 계원상호간의 상부상조의 기능도 겸한다. 보통 10~15가구가 연자맛간을 설립하면서 접원들의 규악인 좌목을 정하고, 기금을 갹출하여 기본금을 마련한다. 연자마계는 곡식을 갈고 빻는 기구인 연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계이기 때문에 이묘나 가옥의 신축, 부모의 삼년상, 관혼상제 등에 쌀을 서로 부조하는 협부조직 이기도 하다.
갈옷: 무명옷에 풋감즙으로 물들이고, 상의는 갈적삼, 하의는 갈점뱅이, 갈중이라 부르며, 제주도민의 남·녀·노·소가 즐겨 입는 노동복이다.
해녀용구: 제주도 여인네들이 생활수단의 하나인 해산물을 캐는 해녀 작업 도구들(물안경, 태왁, 망사리, 빗창, 갈쿠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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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제주교육

"제주교육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코너로 제주교육이 세계로 우주로 떨쳐나가는 미래의 제주교육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그 밑에 전시된 자료는 그러한 미래 제주교육을 기초로 다져가기 위해 만들어진 자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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